과학자
질문을 던진 사람들.
382
고대 자연철학 · BC 600 ~ AD 500
탈레스
BC 624~546년경고대 그리스 밀레토스 출신으로 신화적 설명을 거부하고 자연 원인으로 세상을 설명하려 한 최초의 철학자다.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보았고, 기하학적 추론과 일식 예측으로 '최초의 과학자'라 불린다. 그의 자연 탐구 정신은 이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전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수슈루타
기원전 600년경 활동고대 인도의 의사이자 외과 의학의 창시자로, 《수슈루타 삼히타》에 300여 가지 수술 절차를 기록해 세계 최초의 체계적 외과학 교본을 남겼다.
피타고라스
BC 570~495년경그리스 사모스 출신으로 이탈리아 남부에 철학 공동체를 세웠다. '수가 만물의 본질'이라는 믿음 아래 수학·음악·천문학을 연결한 사유를 폈다. 직각삼각형의 세 변 관계를 증명한 피타고라스 정리와 음악의 수학적 기초 발견으로 자연을 수학으로 설명하는 전통의 선구자가 됐다.
아낙시만드로스
BC 610? – BC 546?밀레투스 학파의 탈레스 제자로, 만물의 근원을 특정 물질이 아닌 규정 불가능한 '아페이론(무한자)'으로 제시했다. 생명이 물에서 유래해 육지로 진출했다는 원시 진화 발상을 최초로 제안한 철학자 중 하나다.
데모크리토스
BC 460~370년경어떤 실험도 검증할 수 없던 시절, 오직 사유만으로 원자 개념에 도달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히포크라테스
BC 460~370년경그리스 코스 섬 출신의 '의학의 아버지'. 질병을 신의 벌이 아닌 자연적 원인으로 보고 체계적 관찰과 기록을 의학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의 학파가 편찬한 히포크라테스 문집은 수백 년간 의학의 표준이 됐으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오늘날에도 인용된다.
엠페도클레스
BC 494? – BC 434?시킬리아 아크라가스 출신 자연철학자로, 세계가 흙·물·불·공기 네 원소로 이루어지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힘에 의해 결합·분리된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채택해 2000년간 서양 자연철학의 표준이 됐다.
레우키포스
기원전 5세기 (정확한 생몰연도 미상)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자료들이 원자론의 원조로 지목하는 인물이다. 물질이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극소 입자(아토모스)로 구성된다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으며, 이 이론을 제자 데모크리토스가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에우독소스
기원전 390년경 – 기원전 337년경크니도스 출신 그리스 수학자·천문학자. 소진법으로 곡선 도형의 넓이를 엄밀히 다루는 방법을 최초로 제시했고, 유클리드 《원론》 제5권의 비례론 기초를 닦았다.
아리스토텔레스
BC 384~322년고대 그리스 최대의 지식 체계를 세운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자연·논리·윤리·정치·시 등 인류 지식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저술을 남겼다. 생물학 연구에서는 실증적 관찰을 중시했지만, 천동설·4원소 같은 오류들이 그의 권위에 가려 2천 년간 과학 발전에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이다.
테오프라스토스
BC 371 – BC 287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후계자로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기술한 최초의 학자다.
헤로필로스
BC 335 – BC 280알렉산드리아에서 인체 해부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실시한 '해부학의 아버지'. 뇌실과 시신경을 기술하고 뇌를 지성의 중추로 규명했다.
유클리드
BC 300년경 활동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그의 『기하학 원론』은 5개의 공리에서 465개의 정리를 논리적으로 도출하며 '수학적 증명'이라는 방법 자체를 확립했다. 2,300년간 수학 교육의 표준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된 책이라고도 한다. 그의 공리적 방법은 수학뿐 아니라 과학과 철학의 추론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아르키메데스
BC 287~212년고대 최고의 수학자·공학자. 부력·지레·원주율 등 수학 원리를 실제 공학 문제에 응용한 선구자였다. 유레카 일화로 유명한 부력 원리뿐 아니라 무한소 개념의 선구적 사용으로 적분의 원형을 제시했다. 로마 공성전에서 그가 설계한 기계들은 시라쿠사를 수년간 지켜냈다.
에라토스테네스
BC 276~194년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을 지낸 박학한 학자. 두 도시의 태양 각도 차이로 지구 둘레를 놀라운 정확도로 계산해 고대 측지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소수를 체로 걸러내는 알고리즘과 '지리학'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도 그다. 수학·천문·지리·역사·문학을 넘나든 헬레니즘 시대의 상징적 학자.
아리스타르코스
BC 310? – BC 230?사모스 출신 천문학자로, 코페르니쿠스보다 약 1800년 앞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자전한다는 태양중심설을 제안했다. 당대에는 무시됐지만 근대 천문학 혁명의 정신적 선조로 재평가받는다.
아폴로니오스
BC 262 – BC 190'대기하학자'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 수학자. 원뿔 곡선 이론을 완성해 케플러와 뉴턴의 수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히파르코스
BC 190경 ~ BC 120경로도스 섬과 니케아에서 활동한 고대 그리스 최고의 천문학자. 바빌로니아 고기록을 자신의 관측과 비교해 세차운동을 발견했으며, 삼각법의 기초인 현 표를 최초로 작성했다. 그의 별 목록과 밝기 등급 체계는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계승됐다.
비트루비우스
기원전 80년경 – 기원전 15년경고대 로마의 건축가·기술자. 건축·토목·기계·음향학을 망라한 《건축십서(De Architectura)》를 저술해 르네상스 이후 서양 건축 이론의 토대를 제공했다.
헤론(알렉산드리아의)
AD 10경 ~ AD 70경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수학자이자 발명가. 세계 최초의 증기 반작용 장치인 아이올리피레를 만들어 열에너지로 회전운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였다. 삼각형의 세 변만으로 넓이를 구하는 '헤론의 공식'도 그의 이름을 딴다.
대플리니우스
AD 23 – AD 79로마의 박물학자로 인류 최초의 자연 백과사전 『박물지』를 편찬했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을 관찰하다 순직했다.
디오스코리데스
서기 40년경 – 서기 90년경로마군 군의관으로 지중해를 돌며 600여 종 식물과 90종 광물의 약효를 직접 관찰해 《약물지》를 편찬했다. 1,500년간 서양·이슬람 의학의 표준 약리서로 사용됐다.
프톨레마이오스
AD 100~170년경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로마 시대 그리스 천문학자·수학자·지리학자. 그의 『알마게스트』는 지구 중심 우주 모형을 정교한 수학으로 완성하여 1,400년간 천문학의 표준이 됐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지리학 저술에서는 위도·경도 좌표 개념을 정착시켰다.
갈레노스
AD 129 ~ AD 216경페르가몬 출신으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주치의를 지낸 의사. 검투사 치료와 동물 해부를 결합해 인체를 가장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그의 이론은 1543년 베살리우스가 수정하기까지 1500년간 서양 의학의 권위였다.
장형
AD 78 – AD 139후한의 과학자·시인·관료로, 세계 최초의 지진계인 후풍지동의를 발명해 지진의 방향을 원격 감지했다. 천문·수학·문학에서 모두 탁월했으며 중국 과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만능 천재로 꼽힌다.
디오판토스
AD 200 – AD 284'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정수 해를 구하는 방정식 이론을 창시해 근대 수론의 씨앗을 뿌렸다.
유휘
서기 225년경 – 서기 295년경위진 시대 중국의 수학자. 내접 다각형을 반복 이분하는 방법으로 당시 세계 최고 정밀도의 원주율 근사를 달성했고, 《구장산술》에 엄밀한 수학적 주석을 더했다.
히파티아
AD 360 – AD 415역사상 최초로 이름이 기록된 여성 수학자.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천문학·철학을 가르치며 고대 학문의 명맥을 이었다.
아리아바타
AD 476 ~ AD 550경인도 수학·천문학의 아버지. 23세에 완성한 《아리아바티야》에서 지구 자전을 주장하고 원주율을 소수점 네 자리까지 계산했다. 사인 함수표와 자리값 체계는 이슬람 학자를 거쳐 유럽에 전해져 근대 수학의 기초가 됐다.
중세와 이슬람 과학 · 500 ~ 1440년
자비르 이븐 하이얀
721~815년경이슬람 황금기의 화학자로, 실험을 통해 물질을 탐구하는 방법론을 최초로 체계화했다. 그의 기법과 도구는 중세 이슬람 세계와 유럽 화학자 모두에게 직접 계승되었으며, '화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알콰리즈미
780~850년경바그다드 지혜의 집(Bayt al-Hikma)에서 활약한 이슬람 황금기의 수학자로, 방정식을 체계적으로 풀어내는 대수학을 창시했다. 그의 이름이 라틴어화 되어 오늘날 '알고리즘(algorithm)'이 되었다.
바누 무사 (무함마드·아흐마드·알하산)
800~873년경바누 무사는 9세기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무함마드·아흐마드·알하산 삼형제로, 자동 기계 설계 백과사전을 저술해 중세 기계공학의 기초를 놓았다.
알킨디
801~873년경알킨디는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활동한 이슬람 황금기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과학자다. 암호 해독에 빈도 분석을 최초로 도입해 현대 암호학의 선구자가 됐다.
사비트 이븐 쿠라
826–901사비트 이븐 쿠라는 하란 출신의 수학자·천문학자로, 지렛대 균형의 수학적 증명과 우애수 공식으로 중세 수학에 기여했다. 그리스 고전 번역에도 큰 역할을 했다.
알바타니
858~929년경알바타니는 시리아 락카에서 활동한 중세 최고의 천문학자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표를 실측으로 교정하고 삼각함수를 천문 계산에 도입했다.
알자히즈
약 776년 ~ 868년아바스 왕조 바스라 출신 아랍 박식가. 무타질라 신학자이자 탁월한 산문 작가로, 7권짜리 『동물의 책』을 통해 동물 행동·적응·생태를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환경이 생물 특성에 영향을 준다는 초기 적응론을 제시해 진화론의 선구자로 재평가된다.
알라지 (라제스)
865 ~ 925중세 이슬람 최고의 의사 중 한 명. 수백 명의 환자를 직접 관찰해 천연두와 홍역을 임상적으로 구별했으며, 화학 분야에서도 알코올 증류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의 저작들은 라틴어로 번역돼 수백 년간 유럽 의학 교재로 쓰였다.
알파라비
872~950년경알파라비는 중앙아시아 파라브 출신의 철학자·음악 이론가로, '제2의 교사'(아리스토텔레스 다음)로 불렸다. 음정 비율을 수학으로 분석한 『음악 대전』은 중세 음악 이론의 표준이 됐다.
알자흐라위
936 – 1013안달루시아(현재 스페인) 출신 아랍 의학자로, 외과를 독립된 의학 분과로 확립한 '외과학의 아버지'다. 30권짜리 의학 백과사전의 마지막 권을 외과에 할애해 200여 가지 기구를 삽화와 함께 기술했으며, 이 저작은 유럽 의과대학에서 수백 년간 표준 교재로 사용됐다.
이븐 알하이삼
965~1040년경권위가 아니라 실험으로 검증하는 태도를 확립해 '최초의 과학자'로 불리는 중세 이슬람의 학자.
알비루니
973~1048년이슬람 황금기 최대의 박식가 중 한 명으로, 천문학·지리학·수학·물리학·인도학을 넘나들며 140여 편의 저술을 남겼다. 정밀 관측을 중시한 그의 과학 방법론은 시대를 크게 앞선 것이었다.
이븐 시나
980~1037년페르시아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로, 당대까지의 의학 지식을 『의학정전』으로 집대성했다. 18세 때 이미 의사로 활약했다고 전해지며, 유럽에서는 '아비센나'로 알려져 있다.
소송 (蘇頌)
1020 ~ 1101송나라의 과학자·관료. 1088년 개봉에 물로 구동되는 거대 천문 시계탑을 완성했다. 탈진기(천형) 장치로 제어되는 이 시계탑은 혼천의·혼상·88개 자동 시보 인형을 동시에 구동했으며, 이후 기계 시계 기술의 선구가 됐다.
심괄
1031~1095년송나라의 관리이자 다방면 학자로, 수학·천문·지리·생물·공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했다. 그의 필담 『몽계필담』은 중국 과학사의 가장 귀중한 일차 사료 중 하나로 꼽힌다.
오마르 하이얌
1048 ~ 1131페르시아의 수학자·천문학자·시인. 원뿔 곡선을 이용해 모든 유형의 3차방정식을 기하학적으로 푸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정밀한 잘랄리 태양력 개정에도 기여했다. 시인으로서의 『루바이야트』는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영역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알이드리시
1100 – 1165모로코 출신 아랍 지리학자로, 시칠리아 노르만 왕 로제르 2세의 후원 아래 15년에 걸쳐 당대 가장 정확한 세계지도와 지리서 『타불라 로게리아나』를 완성했다. 남쪽을 위로 두는 방위를 채택했으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아우르는 70장 지도는 중세 지리학의 최고 성취로 평가된다.
바스카라 2세
1114 – 1185인도 수학사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으로, 『시다한타시로마니』에서 행성 운동 계산을 통해 순간 변화율 개념을 도출했다. 그의 통찰은 뉴턴·라이프니츠보다 500년 앞서 미적분학의 핵심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으며, 케랄라 수학파로 이어지는 인도 수학 전통의 정점을 이뤘다.
알자자리
1136 ~ 1206중세 이슬람 최고의 기계공학자. 1206년 완성한 책은 50가지 정교한 기계를 상세한 도면과 함께 기술한 최초의 공학 매뉴얼이다. 크랭크 기구와 피스톤 펌프 설계는 산업혁명 기계의 직접적 선조로 여겨진다.
피보나치 (레오나르도 피사노)
1170경 ~ 1250경중세 유럽 최고의 수학자. 상인 아버지와 함께 북아프리카에서 성장하며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익혔고, 1202년 『리베르 아바치』에서 이를 유럽에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이 업적은 유럽의 수학·과학·상업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이븐 루시드 (아베로에스)
1126년 ~ 1198년무와히드 왕조 코르도바 출신 안달루시아 철학자·의학자. 라틴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서로 중세 유럽 스콜라 철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 '주석가(Commentator)'라 불렸다. 자연철학·의학·천문학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나시르 알딘 알투시
1201 ~ 1274페르시아의 천문학자·수학자·철학자. 삼각법을 천문학에서 분리해 독자적 학문으로 정립했으며, 마라게 천문대를 세워 당대 최고 수준의 천체 관측을 이끌었다. 그의 천문 이론과 투시 커플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븐 알나피스
1213 – 1288다마스쿠스 태생의 이집트 의학자로, 1242년 저술에서 혈액이 폐를 거쳐 순환한다는 폐순환을 최초로 정확히 기술해 1,300년간 이어진 갈레노스의 오류를 수정했다. 그의 연구는 서유럽에서 독립적으로 '재발견'되기 전까지 아랍 의학 전통 속에 보존됐다.
곽수경
1231~1316년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후원 아래 활약한 천문학자·수리공학자로, 역대 최대 규모의 중국 천문 관측 사업을 이끌었다. 그의 수시력은 300년간 동아시아를 지배한 역법이었다.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약 1168년 ~ 1253년영국 링컨 주교이자 옥스퍼드 초대 총장. 빛을 존재의 근원으로 보는 형이상학과 기하광학을 결합해 자연 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했다. 이론의 결론을 실험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최초로 주장해 근대 과학적 방법론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백운 경한
1298~1374경한(호 백운)은 고려 말의 선승으로, 임제종 승려 석옥청공에게서 법을 전해 받았다. 그가 1372년에 엮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는데, 이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이 책의 하권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최무선
1325~1395년중국이 독점하던 화약 제조법을 스스로 알아내 화약 화학을 실전 무기로 바꾼 고려의 과학자.
이븐 할둔
1332–1406이븐 할둔은 튀니지 출신의 역사가·사회학자로, 『무깟디마』에서 기후·지리·집단결속이 문명의 흥망을 결정한다는 최초의 과학적 역사 이론을 제시했다. '사회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장 뷔리당
약 1301년 ~ 약 1360년프랑스 스콜라 철학자이자 파리대학 교수.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을 비판하고 '임페투스' 개념을 도입해 물체가 계속 운동하는 이유를 내적 힘으로 설명했다. 임페투스론은 뉴턴 관성 법칙의 직접 선구로, 갈릴레오·데카르트의 운동 이론에 영향을 줬다.
니콜 오렘
약 1320년 ~ 1382년프랑스 리지외 주교이자 중세 최고의 수학자·자연철학자. 운동의 세기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나타내는 '형태의 위도' 체계를 창안해 근대 그래프의 선구가 됐다. 등가속 운동을 삼각형 넓이로 증명한 평균속도 정리는 갈릴레오 역학의 기반이 됐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1400~1468년경독일 마인츠 출신의 금세공사로, 금속 활자·유성 잉크·압착 인쇄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해 서양 최초의 대량 인쇄를 실현했다. 그의 발명은 지식의 민주화를 이끌어 과학혁명과 종교개혁의 물적 토대가 되었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 1400 ~ 1700년
장영실
1390년경~미상노비 출신에서 세종의 후원으로 등용돼 조선의 표준 시계와 천문 기기를 만든 발명가.
문종 (왕세자 시절 이향)
1414–1452조선 세종의 왕세자로, 『세종실록』에 따르면 표준 측우기의 설계를 주도해 전국 강우량 측정 체계를 확립했다. 장영실이 기구 제작을 담당했다. 1450년 조선 제5대 왕 문종으로 즉위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473~1543년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이라는 지동설로 1,400년간의 천동설을 뒤집은 천문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
1501–1576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다재다능한 학자. 의사이자 도박꾼이기도 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3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출판해 허수 개념을 수학에 도입했다.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
1512–1594플랑드르 출신의 지도 제작자. 나침반 방위를 직선으로 표현하는 정각 도법을 발명해 대항해 시대 항법을 혁신했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1514~1564년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브뤼셀 출신 해부학자로, 직접 시신을 해부해 1,400년간 의학을 지배해온 갈레노스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1543년 출간한 『인체 구조에 관하여』는 정밀한 해부 삽화와 함께 근대 의학 해부학의 토대를 세웠다. 그는 권위가 아니라 직접 관찰이 의학 지식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피오네 달 페로
1465–1526볼로냐 대학 수학 교수로, 결여 3차 방정식을 1515년경 최초로 풀었으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의 해법은 제자를 통해 알려져 카르다노가 Ars Magna에 발표하는 토대가 됐다.
니콜로 타르탈리아
1500~1557년경독학 수학자로, 3차 방정식 풀이를 독립적으로 재발견해 1539년 카르다노에게 비밀 서약 아래 전수했다. 카르다노가 Ars Magna에 이를 공개하자 격렬한 공개 논쟁을 벌였다.
프랑수아 비에트
1540–1603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수학자. 미지수와 계수를 문자로 표기하는 기호 대수학을 창안해 현대 수학 표기법의 토대를 놓았다.
윌리엄 길버트
1544–1603지구 자기학의 창시자. 구형 자석(테렐라) 실험으로 지구가 거대한 자석임을 처음 증명했고, 전기와 자기를 구별하는 언어를 만들었다.
로도비코 페라리
1522–156510대에 카르다노의 문하에 들어간 수학 천재. 4차 방정식(x⁴)의 일반 풀이를 최초로 발견해 Ars Magna에 수록됐다.
튀코 브라헤
1546~1601년튀코 브라헤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천체 관측 자료를 쌓은 덴마크 천문학자다. 1572년 새로운 별(초신성)을 발견해 '천상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에 금을 냈다. 그의 방대한 관측 데이터는 사후 케플러에게 전해져 행성 운동 법칙 발견의 직접적 토대가 됐다.
조르다노 브루노
1548–1600도미니크 수도사 출신의 이탈리아 철학자로, 우주는 무한하며 수많은 별 각각이 태양과 같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몰려 1600년 로마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당했다.
시몬 스테빈
1548–1620플랑드르 출신의 수학자·공학자로 유체정역학의 기초를 놓고 십진 소수 표기를 유럽에 전파해 과학 계산을 혁신했다.
존 네이피어
1550–1617스코틀랜드 귀족 출신 수학자로 20년간의 연구 끝에 로그를 발명해 과학 계산을 혁신했다. 케플러가 '신의 선물'이라 찬탄한 발명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1561–1626근대 과학의 철학적 아버지. 관찰과 실험을 통한 귀납법을 선언해 중세 사변 철학에서 현대 실험과학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1564~1642년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해 천동설을 무너뜨리고, 과학을 관찰 위에 세운 인물.
요하네스 케플러
1571~1630년요하네스 케플러는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튀코 브라헤의 관측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행성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발견했다. 원이어야 한다는 2천 년의 믿음을 깨고 타원 궤도를 밝혀냈으며, 이 법칙들은 훗날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완벽하게 설명됐다. 행성 운동을 수학으로 기술한 최초의 인물이다.
윌리엄 하비
1578~1657년윌리엄 하비는 영국의 의사로, 동물 해부와 정밀한 정량 실험을 통해 심장이 피를 순환시키는 펌프라는 것을 증명했다. 1628년 출간한 『동물의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는 갈레노스의 1,400년 된 혈액 생성 이론을 무너뜨리고 근대 생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영국 왕 찰스 1세의 주치의이기도 했다.
빌레브로르트 스넬
1580–1626네덜란드의 수학자·물리학자로, 빛이 매질을 바꿀 때 꺾이는 각도의 정확한 수학 법칙(스넬의 법칙)을 발견해 근대 광학의 정량적 기초를 놓았다.
르네 데카르트
1596~1650년르네 데카르트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x·y 좌표계로 도형을 방정식으로 다루는 해석기하학을 창시해 대수학과 기하학을 통합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방법적 회의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됐다. 그의 수학적 방법은 뉴턴 역학 성립에 직접 기여했다.
오토 폰 게리케
1602–1686마그데부르크 시장이자 뛰어난 실험 과학자. 진공 펌프를 발명하고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으로 대기압의 위력을 극적으로 증명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2000년 통념을 실험으로 무너뜨렸다.
피에르 드 페르마
1607–1665낮에는 법관, 밤에는 수학자로 살았던 프랑스의 아마추어 천재. 파스칼과 함께 확률론을 창시하고 정수론에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1608~1647년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갈릴레이의 제자로, 1643년 수은이 든 유리관을 뒤집어 76cm 수은 기둥 위에 진공이 생기는 것을 보임으로써 최초로 대기압의 존재를 증명했다.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기압계는 기상학의 토대가 됐다. 압력과 유체역학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프란체스코 그리말디
1618–1663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예수회 사제이자 물리학자. 빛이 작은 틈을 통과할 때 직진을 벗어나 퍼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회절(diffractio)'이라 명명했다. 저서는 사후인 1665년에 출판됐다.
블레즈 파스칼
1623~1662년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19세에 기계식 계산기 파스칼린을 만들고 토리첼리 실험을 확장해 퓌드돔 산 정상에서 기압이 고도에 따라 낮아짐을 증명했다. 파스칼의 원리는 오늘날 수압기·유압 브레이크의 기초이며, 압력의 SI 단위 '파스칼(Pa)'이 그의 이름에서 왔다.
프란체스코 레디
1626–1697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신 의사·과학자. 고기 항아리 대조 실험으로 구더기가 파리 알에서만 생긴다는 것을 증명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000년간 유지된 자연발생설에 최초의 실험적 타격을 가했다.
로버트 보일
1627~1691년로버트 보일은 아일랜드 출신 영국 화학자로, 공기 펌프 실험을 통해 기체의 압력과 부피가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확립했다. 1661년 출간한 『회의적 화학자』에서 4원소설을 비판하고 원소를 실험적으로 정의해 연금술과 근대 화학을 갈라놓았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마르첼로 말피기
1628–1694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의사·해부학자. 현미경으로 개구리 폐에서 모세혈관을 발견해 하비의 혈액 순환론을 해부학적으로 완성했다. 비교해부학과 발생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1629–169517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천문학자 중 한 명. 빛을 파동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정립했고, 진자시계를 발명해 정밀 시간 측정의 새 시대를 열었다. 토성의 고리 구조와 위성 타이탄을 최초로 발견했다.
안톤 판 레이우엔훅
1632~1723년안톤 판 레이우엔훅은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 출신 미생물학자로, 직접 갈아 만든 렌즈로 200배 이상의 현미경을 제작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생물 세계를 처음으로 관찰했다. 세균·원생동물·적혈구·정자 등을 기록했고, 왕립학회에 보고해 과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로버트 훅
1635~1703년로버트 훅은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직접 개량한 현미경으로 코르크 세포를 관찰하고 '세포'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세포 생물학의 문을 열었다. 그의 저서 『마이크로그라피아』(1665)는 당대 최대 베스트셀러였다. 탄성력과 변형의 관계를 나타내는 '훅의 법칙'도 그의 업적이다.
니콜라스 스테노
1638–1686덴마크 태생의 해부학자이자 지질학자로, 지층이 쌓이는 순서와 원리를 규명해 현대 지구과학의 토대를 놓았다. 화석이 실제 생물의 유해임을 논증하고, 세 가지 층서 법칙을 정립해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아이작 뉴턴
1643~1727년지상과 천체의 운동을 하나의 수학 법칙으로 통일해 고전역학을 세운 물리학자.
올레 뢰머
1644–1710덴마크 천문학자. 파리 천문대에서 목성 위성 이오의 식 주기를 분석해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그의 측정값 약 2.2×10⁸ m/s는 실제 값의 약 75% 수준이었지만, 빛의 속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개념 자체를 확립한 혁명적 성과였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1646–1716뉴턴과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발전시킨 독일의 박학다식한 학자. 오늘날 전 세계 수학 교과서에 쓰이는 dy/dx와 ∫ 기호를 고안했다. 철학·법학·외교까지 아우른 르네상스형 인물.
에드먼드 핼리
1656–1742영국의 천문학자로 핼리 혜성의 주기성을 예측하고, 세계 최초의 기상 지도로 무역풍과 몬순의 원인을 설명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출판 비용을 직접 부담해 과학혁명의 완성에도 기여했다.
화학혁명 · 1703 ~ 1819년
게오르크 에른스트 슈탈
1660–1734할레 대학 교수이자 프로이센 왕실 주치의로, 연소와 금속 산화를 '플로지스톤'이라는 단일 원리로 설명하는 이론을 완성했다. 이 이론은 70년간 화학의 지배 패러다임이 됐다가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에 의해 전복됐지만, 이를 반증하려는 정량 실험의 누적이 근대 화학혁명의 불씨가 됐다.
스티븐 헤일스
1677–1761영국 성직자이자 박물학자로, 식물의 수액 압력과 가스 교환을 연구하던 중 기체를 물 위에서 포집하는 기체 수조법을 고안했다. 저서 『식물 정역학』(1727)은 블랙·프리스틀리·캐번디시 등이 다양한 기체를 분리하는 방법론적 기반이 됐다.
조지프 블랙
1728–1799. 스코틀랜드 태생 화학자·의사. 글래스고 대학, 에든버러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화학혁명의 전야를 밝힌 스코틀랜드 화학자. 기체가 여럿 존재할 수 있음을 처음 실험으로 증명해 기체 화학의 문을 열었다.
헨리 캐번디시
1731~1810년헨리 캐번디시는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의 은둔형 과학자로, 수소를 발견하고 물이 원소가 아닌 합성물임을 시사해 화학혁명의 토대를 닦았다. 동시에 비틀림 저울로 지구의 질량을 측정하는 등 물리학에서도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극도의 내성적 성격으로 평생 사교를 피했지만, 훗날 발견된 그의 실험 노트에는 당대를 훨씬 앞선 발견들이 가득했다.
조지프 프리스틀리
1733~1804년산소를 라부아지에보다 먼저 분리했으나 끝까지 플로지스톤설로 해석한 화학자 — 발견과 이해가 별개임을 보여준다.
토르베른 베리만
1735–1784웁살라 대학 교수로, 59종 물질의 대치 반응 순위를 습식·건식 두 조건에서 실험으로 확정한 대규모 친화력 표를 발표했다. 정량 분석 화학의 선구자로, 그의 연구는 원자가·깁스 자유에너지 개념으로 이어지는 반응성 이론의 토대가 됐다.
루이베르나르 기통 드 모르보
1737–1816디종의 법학자 출신으로 독학으로 화학을 연구했다. 라부아지에·베르톨레·푸르크루아와 함께 『화학 명명법』(1787)을 저술해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을 성분 기반으로 체계화했다. 이 명명법은 현재 IUPAC 국제 명명법의 직접적 전신이다.
카를 빌헬름 셸레
1742–1786. 스웨덴 화학자·약제사. 포메라니아(현 독일) 출신으로 스웨덴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원소와 유기산을 발견했다.역사상 가장 불운한 화학자. 염소와 산소를 비롯해 수많은 원소·화합물을 발견했으나 요절하고 공을 빼앗겼다.
앙투안 라부아지에
1743~1794년저울로 플로지스톤설을 뒤엎고 화학을 측정 과학으로 만든 '근대 화학의 아버지'. 프랑스 혁명기에 처형되었다.
마르틴 하인리히 클라프로트
1743–1817베를린에서 약사로 활동하며 탁월한 분석 화학 기술로 우라늄·지르코늄·티탄 등 여러 원소를 발견·확인했다. 특히 1789년 피치블렌드에서 새 원소의 산화물을 분리하고 천왕성(Uranus)의 이름을 따 '우라니움'이라 명명했다.
자크 샤를
1746–1823. 프랑스 물리학자·발명가. 최초의 유인 수소 기구 비행가이자 기체 법칙의 선구자.기체와 온도의 관계를 최초로 정량화한 프랑스 물리학자. 수소 기구를 직접 타고 하늘을 가로질렀다.
클로드 베르톨레
1748–1822.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와 함께 새 화학 명명법을 제정하고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동행했다.화학 반응의 가역성과 질량 작용을 처음 주창한 프랑스 화학자. 현대 화학 평형론의 선구자.
럼퍼드 백작 (벤저민 톰프슨)
1753–1814미국 태생의 영국 과학자·군인으로, 대포 포신 절삭 중 열이 무한히 발생함을 보여 칼로릭 이론에 치명타를 입혔다. 열역학의 선구자이자 왕립연구소 공동 창립자.
조제프 프루스트
1754~1826년조제프 프루스트는 프랑스 출신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화학자로, 화합물이 언제나 일정한 질량비의 원소로 이루어진다는 정비례 법칙을 확립했다. 이 법칙은 돌턴 원자설의 결정적 실험 근거가 되어 근대 화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스페인의 연구소가 파괴되어 말년을 가난 속에서 보냈지만, 그의 법칙은 영원히 화학의 주춧돌로 남았다.
예레미아스 리히터
1762–1807독일 화학자로 화학 반응에서 물질이 일정한 무게 비율로 결합함을 체계화하여 '화학량론'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정량 화학의 기초를 놓았다.
윌리엄 헨리
1774–1836영국 맨체스터의 화학자로 기체가 액체에 녹는 양이 압력에 비례함을 발견, 헨리의 법칙(C = k·P)으로 기체-액체 화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1778~1850년조제프 루이 게이뤼삭은 프랑스 혁명 세대를 대표하는 화학자·물리학자로, 기체의 부피 반응 법칙을 발견해 아보가드로의 분자 가설과 화학량론의 길을 열었다. 과학적 관측을 위해 7,000미터 이상을 열기구로 비행할 만큼 실험 정신이 넘쳤으며, 화학과 물리 양쪽에 걸쳐 이론과 실험을 겸비한 19세기 초 프랑스 과학의 정점이었다.
험프리 데이비
1778–1829. 영국 화학자·발명가. 왕립연구소 교수, 왕립학회 회장. 마이클 패러데이의 스승.전기화학의 아버지. 볼타 전지를 활용해 반응성 금속 원소들을 잇달아 분리하고, 광부를 구하는 안전등도 발명했다.
요한 되베라이너
1780–1849독일 화학자로 화학적 성질이 유사한 세 원소의 원자량 사이에 산술 평균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 '3원소 조' 개념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로 이어지는 역사의 첫 발걸음이었다.
피에르 뒬롱
1785–1838프랑스 물리학자·화학자로 알렉시 프티와 함께 금속 원소의 비열과 원자량의 곱이 일정함(≈ 3R)을 발견, 원자량 결정의 실용 기준을 마련했다.
알렉시 프티
1791–1820프랑스의 천재 물리학자로 피에르 뒬롱과 함께 금속 비열 법칙을 발견했다. 뒬롱-프티 법칙은 그의 유일한 주요 업적이지만 원자량 결정에 결정적인 도구가 됐다. 29세에 요절했다.
윌리엄 울러스턴
1766–1828영국의 화학자·물리학자. 백금 광석 처리 중 백금족 원소인 팔라듐과 로듐을 잇달아 발견했다. 백금 분말을 고온 압축해 성형하는 야금법을 개발해 분말 야금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광학 분야에서는 울러스턴 프리즘으로 태양 스펙트럼의 어두운 흡수선을 최초로 관찰했다.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
1779–1848스웨덴의 화학자로 현대 화학의 언어를 정립한 인물이다. 원소의 라틴·그리스어 이름에서 한두 글자를 따 원소 기호 체계를 도입해 화학식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40여 원소의 원자량을 정밀 측정해 원자 이론의 실험적 기초를 세웠으며, 이 과정에서 규소·셀레늄·토륨·세륨을 발견했다.
산업혁명과 전기 · 1752 ~ 1900년
벤저민 프랭클린
1706–1790연 실험으로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밝히고 피뢰침을 발명한 미국의 과학자·발명가·정치가.
샤를 드 쿨롱
1736–1806비틀림 저울로 전하 사이의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을 측정해 전자기학의 정량화를 이끈 프랑스 물리학자.
제임스 와트
1736~1819년스코틀랜드 출신의 발명가이자 공학자로, 뉴커먼 증기기관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산업혁명의 기계 동력을 탄생시켰다. 물리학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률'을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그의 이름은 전력의 단위 '와트(W)'로 영구히 남아 있다.
루이지 갈바니
1737–1798개구리 다리 실험으로 동물 전기(생체전기)를 발견하고 볼타 전지 탄생에 기여한 이탈리아 의사·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
1745~1827년지속적으로 흐르는 전류를 처음 만들어 전기화학과 전자기학 연구의 문을 연 물리학자. 전압 단위 '볼트'의 어원.
조제프 푸리에
1768–1830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동행한 수학자·행정가로, 열 전도를 연구하다 임의 함수를 삼각급수로 전개하는 방법을 발견해 현대 신호 처리의 기반을 놓았다.
토마스 제베크
1770–1831독일의 물리학자로, 서로 다른 두 금속의 접합부에 온도 차이를 주면 전기가 발생하는 열전효과를 발견했다. 이 현상은 그의 이름을 따 '제베크 효과'로 불리며, 열전발전과 열전냉각 기술의 기초가 됐다.
앙드레마리 앙페르
1775~1836년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로, 외르스테드의 발견 직후 전류와 자기력의 관계를 정밀한 수식으로 정리해 전기역학을 창시했다. 맥스웰이 '전기 과학의 뉴턴'이라 불렀으며, 전류의 단위 '암페어(A)'가 그의 이름에서 왔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1777–1855독일이 낳은 가장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수학의 왕자'라 불렸다. 자기 절대 단위계를 확립하고 지구 자기장을 정밀 측정했으며, 자기선속밀도 단위 '가우스(Gs)'와 맥스웰 방정식의 자기 가우스 법칙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
1777~1851년덴마크의 물리학자로, 1820년 강의 실험 도중 전류가 자침을 꺾는 것을 발견해 전기와 자기가 하나의 현상임을 처음 밝혔다. 이 발견은 앙페르·패러데이·맥스웰로 이어지는 전자기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조지 스티븐슨
1781–1848증기 기관차 '로켓'으로 실용적 철도 시대를 열어 산업혁명의 교통 혁명을 이끈 영국의 철도 엔지니어.
루이 다게르
1787~1851년프랑스의 화가이자 발명가로, 1839년 빛으로 상을 영구히 고정하는 다게레오타이프를 발표해 인류 최초의 실용 사진술을 선보였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빛과 화학의 결합을 탐구한 그의 발명은 과학 기록·의학·저널리즘·예술 전반을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
1787–1826유리 연마공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광학 천재가 된 프라운호퍼는 태양 스펙트럼의 어두운 흡수선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분광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오귀스탱 프레넬
1788–1827프랑스의 물리학자·토목공학자로, 빛의 회절·간섭 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파동설을 확립했다. 프레넬 렌즈를 발명해 등대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도 했다.
제임스 허튼
1726–1797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의 지질학자로, 암석 노두 관찰을 통해 지구의 역사가 수십억 년에 달한다는 '심층 시간' 개념을 제창했다. '시작의 흔적도, 끝의 전망도 없다'는 그의 결론은 지질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된 자연과학으로 확립했다.
게오르크 옴
1789~1854년독일의 물리학자로, 전압·전류·저항의 비례 관계(V=IR)를 실험으로 밝혀 모든 전기 회로 계산의 기초를 마련했다. 발표 당시 학계의 비판으로 교수직을 잃었으나 15년 뒤 국제적 인정을 받았고, 저항의 단위 '옴(Ω)'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마이클 패러데이
1791~1867년정규 교육을 못 받은 제본공 견습생에서 출발해 전기 문명의 토대를 놓은 실험 물리학자.
새뮤얼 모스
1791–1872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모스 부호와 전신기를 발명해 장거리 실시간 통신 시대를 연 미국의 발명가·화가.
사디 카르노
1796~1832년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공학자로, 28세에 단 한 권의 책에서 열기관의 효율에 이론적 한계가 있음을 증명해 열역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으나 사후 클라우지우스와 켈빈이 그의 연구를 발굴해 열역학 제2법칙과 엔트로피 개념의 토대로 삼았다.
조지프 헨리
1797–1878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패러데이와 독립적으로 전자기 유도를 연구했다. 자기 인덕턴스를 발견했으며, 인덕턴스 단위 '헨리(H)'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찰스 휘트스톤
1802–1875영국의 물리학자이자 발명가로, 정밀 저항 측정의 표준인 휘트스톤 브리지를 대중화했다. 윌리엄 쿡과 함께 전신 시스템을 공동 발명하고, 음향학·광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크리스티안 도플러
1803–1853잘츠부르크 출신 물리학자로, 파원이나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관측 진동수가 달라지는 도플러 효과를 1842년 발표해 천문학과 음향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로버트 스티븐슨
1803–1859조지 스티븐슨의 아들로, 증기 기관차 '로켓'의 주설계자이자 로버트 스티븐슨 앤드 컴퍼니를 이끌었다. 이후 브리타니아 교량 등 혁신적인 철도 교량 설계로도 명성을 떨쳤다.
하인리히 렌츠
1804–1865발트 독일 출신의 러시아 제국 물리학자로, 전자기 유도 전류의 방향을 결정하는 렌츠의 법칙을 1834년에 발표했다. 이 법칙은 에너지 보존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현대 전기 기기 설계의 근본 원리로 쓰인다.
윌리엄 스미스
1769–1839잉글랜드 옥스퍼드셔 출신의 측량사·지질학자로, 운하 공사 현장에서 동일한 지층에는 동일한 화석이 포함된다는 원리를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1815년 잉글랜드·웨일스의 대규모 지질도를 제작해 근대 지층학의 기초를 놓았다.
제임스 프레스콧 줄
1818~1889년영국 맨체스터 출신으로, 정밀한 실험을 통해 열과 일이 같은 에너지의 형태임을 증명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의 실험적 토대를 세웠으며 에너지 단위 '줄(J)'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레옹 푸코
1819–1868프랑스 물리학자 푸코는 파리 판테온의 거대 진자로 지구 자전을 육안으로 처음 증명했으며, 자이로스코프를 발명하고 지구 표면에서 광속을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헤르만 폰 헬름홀츠
1821–1894의사이자 물리학자인 헬름홀츠는 1847년 에너지 보존 법칙을 수학적으로 확립하고, 검안경을 발명해 살아 있는 눈 내부를 처음 들여다보았으며, 신경 신호의 전달 속도를 최초로 측정했다.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1822–1888독일의 물리학자·수학자로, 엔트로피 개념을 창안하고 열역학 제2법칙을 수학적으로 체계화했다. 카르노의 연구를 발전시켜 열이 저절로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정량화했다.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1824–1887독일의 물리학자로, 복잡한 전기 회로 분석에 필수적인 두 법칙(KCL·KVL)을 발표했다. 분젠과 함께 분광학을 발전시켜 태양의 원소 조성을 밝히기도 했다.
윌리엄 톰슨 (켈빈 경)
1824–1907절대영도와 열역학적 절대온도 눈금을 도입해 현대 열역학의 기반을 세운 영국의 수리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1831~1879년전기·자기·빛을 하나의 수학으로 묶어 무선 통신 시대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물리학자.
니콜라우스 오토
1832–1891독일의 발명가·기술자로,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행정 가솔린 엔진을 실용화했다. 그의 오토 사이클은 이후 자동차·항공기 엔진의 기본 원리가 되어 현대 교통 문명을 열었다.
고틀리프 다임러
1834–1900독일 엔지니어 다임러는 빌헬름 마이바흐와 함께 고속 4행정 가솔린 엔진을 개발해 마차에 얹음으로써 세계 최초의 4륜 자동차를 완성했고, 오늘날 메르세데스-벤츠의 전신을 설립했다.
루이 아가시
1807–1873스위스 태생의 자연과학자로, 알프스 빙하 연구를 통해 유럽 대륙이 과거 거대한 빙하에 뒤덮였다는 '빙하 시대' 이론을 제창했다. 훗날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미국 자연사 연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루트비히 볼츠만
1844–1906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로, 열역학을 원자와 분자의 통계적 거동으로 설명하는 통계역학을 창시했다. 엔트로피를 미시 상태 수의 로그로 표현한 공식은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칼 벤츠
1844–1929독일 엔지니어 칼 벤츠는 1886년 세계 최초의 진정한 가솔린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특허를 취득했으며, 아내 베르타의 104 km 장거리 시범 주행으로 자동차의 실용성을 세상에 알렸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1847~1922년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발명가로, 1876년 소리를 전기 신호로 변환해 전송하는 전화를 발명했다. 청각장애인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 소리와 진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전화 발명 이후에도 항공·수중 음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명 활동을 이어갔다.
토머스 에디슨
1847~1931년미국의 발명가로, 백열전구뿐 아니라 발전소·배전망·전력 계량 시스템을 통합 설계해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인프라를 만들었다. 체계적 실험을 통해 발명을 '공장'처럼 운영한 최초의 인물로, 현대 산업 연구·개발의 모델을 제시했다.
존 헨리 포인팅
1852–1914영국의 물리학자로, 1884년 맥스웰 방정식으로부터 전자기 에너지 흐름 밀도를 나타내는 포인팅 벡터 S = E × H를 유도했다. 전자기 에너지가 전선 주변 공간을 통해 이동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업적으로 유명하다.
매슈 폰테인 모리
1806–1873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해군 장교·과학자로, 수십만 건의 항해 일지를 분석해 전 세계 해류와 바람 패턴을 체계화했다. 『바다의 물리 지리학』(1855)은 근대 해양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으며, 그는 '해양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니콜라 테슬라
1856–1943세르비아 출신 미국 발명가로, 교류 유도 전동기와 다상 교류 전력 시스템을 발명해 현대 전력 인프라의 기틀을 닦았다. 자기선속밀도 SI 단위 '테슬라(T)'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하인리히 헤르츠
1857~1894년독일의 물리학자로, 36세의 짧은 생애에 맥스웰이 예측한 전자기파를 실험으로 처음 만들어 검출해 이론을 실재로 입증했다. 그의 발견은 마르코니의 라디오·레이더·와이파이로 이어지는 무선 통신 시대를 직접 열었다.
원자와 주기율표 · 1800 ~ 1919년
존 돌턴
1766~1844년원소가 고유한 무게로 정수비 결합함을 보여 원자에 실험적 근거를 준 화학자.
아메데오 아보가드로
1776~1856년이탈리아 토리노의 귀족 출신 과학자로, 1811년 게이뤼삭의 기체 반응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분자' 가설을 내놓았다. 당대 화학계에 외면당했지만, 사후 카니차로에 의해 재발견되어 현대 원자·분자 이론과 몰(mol) 단위의 초석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뵐러
1800–1882무기물에서 유기물인 요소를 최초로 합성한 독일 화학자. 이 발견은 생기론을 붕괴시키고 유기화학의 새 시대를 열었다.
게르맹 앙리 헤스
1802–1850화학 반응의 열량이 반응 경로와 무관함을 증명한 스위스 태생의 러시아 화학자. 열화학의 핵심 법칙을 수립했다.
토머스 그레이엄
1805–1869기체 확산 속도가 분자량의 제곱근에 반비례함을 밝힌 스코틀랜드 화학자. 콜로이드 화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로베르트 분젠
1811–1899독일 화학자로 키르히호프와 함께 분광 분석법을 확립하고 분젠 버너를 발명했으며, 세슘과 루비듐을 스펙트럼으로 발견한 실험 화학의 거장이다.
스타니슬라오 카니차로
1826–1910이탈리아 화학자로 아보가드로의 분자 가설을 부활시켜 원자량 표준화를 이루었으며, 알데히드의 자가 산화환원 반응인 카니차로 반응을 발견했다.
아우구스트 케쿨레
1829~1896년독일의 유기화학자로, 탄소 원자가 사슬과 고리를 이루며 결합한다는 구조 이론을 발전시켰다. 벤젠 고리 구조의 제안은 유기화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직관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현대 의약품과 소재 산업의 뼈대가 되었다.
프랑수아마리 라울
1830–1901프랑스 화학자로 용액의 증기 압력이 용매의 몰분율에 비례한다는 라울의 법칙을 실험적으로 확립하여 현대 용액 화학의 초석을 마련했다.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1834~1907년원소를 성질이 반복되도록 배열하고, 수년 뒤 발견될 원소들을 예측한 빈칸을 남긴 화학자.
요하네스 판데르발스
1837–1923네덜란드 물리학자로 실제 기체의 분자 크기와 분자 간 인력을 고려한 상태방정식을 유도하여 기체와 액체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했으며 19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존 뉴랜즈
1837–1898영국 화학자로 원소를 원자량 순으로 배열했을 때 나타나는 옥타브 법칙을 발견하여 주기율표의 직접적 선구자가 됐다.
조사이어 윌러드 깁스
1839–1903열역학과 통계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확립한 미국의 이론물리화학자로, 현대 화학 에너지론의 아버지로 불린다. 예일 대학교에서 평생 활동했으며, 당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사후에 19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재평가됐다.
레일리 경
1842–1919영국의 물리학자로, 대기 중 질소와 화학적으로 제조한 질소의 밀도 차이를 발견해 미지의 기체 존재를 시사했다. 윌리엄 램지와 협력해 1894년 아르곤을 분리하고 190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늘이 파란 이유를 설명하는 레일리 산란 법칙으로도 유명하다.
빌헬름 뢴트겐
1845~1923년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물리학 교수로, 1895년 음극선 실험 중 물질을 투과하는 미지의 광선을 우연히 발견했다. 특허를 거부하고 발견을 즉시 공개한 덕분에 X선은 수주 만에 전 세계 의학계로 퍼져나갔다.
에밀 피셔
1852–1919탄수화물의 입체 구조를 체계적으로 규명하고 피셔 투영식을 고안한 독일 화학자. 19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조지프 존 톰슨
1856~1940년영국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 소장으로, 음극선 실험으로 전자를 발견해 원자 내부 구조 연구의 서막을 열었다. 뛰어난 교육자이기도 했던 그의 연구실에서 러더퍼드 등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발터 헤르만 네른스트
1864–1941독일의 물리화학자로, 전지 전압과 이온 농도의 관계를 열역학으로 유도한 네른스트 방정식을 확립했다. 또한 절대영도에서 완전 결정의 엔트로피가 0이라는 열역학 제3법칙을 제안해 19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알프레트 베르너
1866–1919금속 착물의 배위 이론을 제안해 현대 무기화학의 토대를 세운 스위스 화학자. 1913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프리츠 하버
1868–1934독일 화학자로 대기 중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공정을 개발해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으며, 화학무기 개발 연루로 인해 공과(功過)가 교차하는 인물이다.
어니스트 러더퍼드
1871~1937년뉴질랜드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핵물리학의 아버지'. 방사성 연구로 19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뒤 1911년 원자핵을 발견했고, 원소를 인공적으로 변환시킨 최초의 과학자이기도 하다.
모리스 트래버스
1872–1961영국의 화학자로, 윌리엄 램지와 함께 1898년 액체 공기 분별 증류를 통해 네온·크립톤·제논을 잇달아 발견했다.
길버트 뉴턴 루이스
1875–1946미국의 물리화학자로, 전자쌍 공유에 의한 공유결합 이론을 제안하고 루이스 구조식을 고안해 현대 화학 결합론의 기초를 놓았다. 또한 전자쌍을 주고받는 루이스 산염기 이론으로 산염기 개념을 대폭 확장했다.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
1877–1945영국의 물리화학자로, 전기장과 자기장을 결합한 질량분석기를 발명해 동위원소를 물리적으로 분리·측정하는 데 처음 성공했다. 이 업적으로 192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기기는 현대 질량분석학의 원형이 됐다.
프레더릭 소디
1877–1956영국의 방사화학자로, 러더퍼드와 함께 방사성 붕괴를 연구해 원소 변환을 밝혔다. '동위원소'라는 용어를 만들어 같은 원소의 여러 질량 변종이 존재함을 이론화했으며, 이로써 192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스반테 아레니우스
1859–1927전해질이 물에서 이온으로 나뉜다는 이온화 이론을 처음 제시해 산·염기 화학의 기초를 놓았다.
앙리 르샤틀리에
1850–1936화학 평형이 외부 조건 변화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원리를 제시해 화학 공정 설계의 토대를 마련했다.
야코뷔스 반트호프
1852–1911화학 반응 속도, 평형 상수, 삼투압을 수학적으로 체계화해 물리화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창시했다.
헨리 모즐리
1887~1915년옥스퍼드 출신의 영국 물리학자로, 26세에 X선 분광 실험으로 원자번호의 물리적 의미를 확립해 주기율표를 경험적 목록에서 물리 법칙으로 바꿨다. 1차대전에 자원입대해 27세로 갈리폴리에서 전사하며 노벨상을 받지 못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윌리엄 램지
1852–1916공기에서 비활성 기체(아르곤, 네온, 크립톤, 제논)를 잇달아 발견해 주기율표에 0족을 추가했다.
앙리 베크렐
1852–1908우라늄 광석이 빛 없이도 사진 건판을 감광시킨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해 방사능이라는 새 현상을 과학계에 알렸다.
로버트 밀리컨
1868–1953기름방울 실험으로 전자 하나의 전하량(e = 1.602×10⁻¹⁹ C)을 정밀 측정해 전자의 기본 전하가 자연의 불변 단위임을 확립했다.
진화와 생명 · 1796 ~ 1910년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1744~1829년장바티스트 라마르크는 다윈 이전 프랑스의 박물학자로, 생물이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최초의 체계적 진화론을 제시했다. 획득형질 유전 가설은 훗날 틀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생명의 변화 가능성이라는 발상 자체가 생물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만년에는 시력을 잃고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현대 진화생물학의 선구자로 재평가된다.
에드워드 제너
1749–1823영국의 내과의사·박물학자. 우유 짜는 여인들이 천연두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민간 지식에서 출발해 우두 접종법을 개발했다. 현대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방법은 결국 천연두의 지구 박멸로 이어졌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1769–185919세기 가장 폭넓은 지식을 가진 박물학자. 1799~1804년 남미 탐험에서 기후·고도·생물 분포의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기록해 생물지리학과 생태학의 기초를 놓았다. 다윈·에이서 그레이·가우스 등 수많은 과학자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자연을 통일된 전체로 파악하는 과학적 세계관을 전파했다.
조르주 퀴비에
1769–1832조르주 퀴비에는 비교해부학으로 화석 생물이 현생 종과 다른 멸종된 생물임을 처음 증명하고, 척추동물 분류학과 고생물학의 기초를 놓은 프랑스의 자연학자다.
찰스 라이엘
1797–1875찰스 라이엘은 현재와 동일한 지질 과정이 과거에도 작동했다는 동일과정설로 현대 지질학을 확립하고, 진화론 탄생의 지적 토대를 마련한 영국의 지질학자다.
토머스 맬서스
1766–1834영국의 경제학자·성직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하며 이 불균형이 생존 경쟁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다윈과 윌리스가 자연선택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 영감을 주었다.
마티아스 슐라이덴
1804~1881년마티아스 슐라이덴은 독일의 식물학자로, 1838년 식물 조직이 모두 세포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해 세포설의 첫 토대를 놓았다. 슈반과의 협력을 통해 동물까지 확장된 세포설이 완성되었으며, 생물학이 현미경이라는 도구와 결합한 정량 과학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찰스 다윈
1809~1882년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선택으로 변해 왔음을 밝혀 생명 전체를 잇는 원리를 제시한 박물학자.
테오도어 슈반
1810~1882년테오도어 슈반은 독일의 생리학자로, 동물 조직을 현미경으로 연구해 동물도 식물과 마찬가지로 세포로 이루어졌음을 보이고 세포설을 완성시켰다. 그가 발견한 슈반 세포는 오늘날 신경과학에서 신경섬유의 절연을 담당하는 핵심 세포로 알려져 있으며, 발효와 소화효소 연구에서도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클로드 베르나르
1813–1878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생리학자로, 엄밀한 동물 실험을 통해 생리학을 정량 과학으로 끌어올렸다. 혈당 조절, 췌장 기능, 신경 억제 등을 밝혔으며, 생물이 외부와 무관하게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항상성의 선구적 개념을 제시해 현대 의생명과학의 토대를 닦았다.
이그나즈 제멜바이스
1818~1865년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헝가리 출신 의사로, 비엔나 산부인과에서 손 소독으로 산모 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추었다. 세균이 알려지기 전이라 동료들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생전에는 조롱과 배척을 받았으나, 오늘날 감염 예방 의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된다. 그의 삶은 옳은 과학적 통찰이 동시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비극적 사례로도 유명하다.
루돌프 피르호
1821–1902독일의 의사·병리학자.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나온다'를 선언하고 세포병리학을 창시했다. 의학뿐 아니라 인류학·공중보건·사회 개혁에도 폭넓게 기여해 19세기 독일 과학의 거인으로 불린다.
프랜시스 골턴
1822–1911찰스 다윈의 사촌으로, 유전 형질을 통계적으로 연구해 회귀와 상관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현대 통계학과 생물측정학의 기초를 쌓았으나, 이후 우생학을 제창해 20세기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레고어 멘델
1822~1884년완두콩 실험으로 유전 법칙을 밝혔으나 시대를 앞서 34년간 잊혔다가 재발견된 수도사이자 유전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
1822~1895년루이 파스퇴르는 19세기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로, 세균설을 확립하고 현대 예방의학의 기초를 놓은 과학사의 거인이다. 자연발생설을 반박하고 파스퇴리제이션을 개발했으며, 광견병 백신으로 예방접종 시대를 열었다. 그의 업적은 의학·농업·식품 산업 전반에 걸쳐 수억 명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1823–1913영국의 박물학자·탐험가. 아마존과 말라야 군도를 탐험하며 자연선택 이론을 다윈과 독립적으로 완성했다. 동물지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이름을 딴 '월리스 선'은 오늘날에도 쓰인다.
조지프 리스터
1827~1912년조지프 리스터는 영국의 외과의사로, 파스퇴르의 세균설을 수술에 적용해 소독 수술의 시대를 열었다. 그의 석탄산 소독법은 수술 후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춰 현대 외과의 토대가 됐으며, 오늘날 모든 수술실의 무균 절차는 그의 통찰에서 출발한다.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
1792–1876에스토니아 출신의 독일계 박물학자. 포유류 난자를 최초로 직접 발견하고 척추동물 배아가 초기에 공통 형태를 공유하다가 나중에 분기한다는 발생학 법칙을 수립했다. 현대 발달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아우구스트 바이스만
1834–1914독일의 생물학자로, 생식세포와 체세포를 엄격히 구분하는 생식질설을 제창해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논리적·실험적으로 반박했다. 그의 이론은 멘델 유전학과 결합되어 신다윈주의의 초석이 됐으며, 훗날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와 맥을 같이한다.
로베르트 코흐
1843~1910년로베르트 코흐는 독일의 의사이자 세균학자로, 특정 세균이 특정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엄밀한 실험으로 증명해 감염병 연구의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했다. 결핵균 발견과 코흐의 원칙은 현대 의학이 감염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기본 틀을 제공했으며, 세균학이 독립 학문으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발터 플레밍
1843–1905발터 플레밍은 아닐린 염색법으로 세포 분열 시 염색체의 움직임을 처음 상세히 기술하여 유사분열 개념을 확립하고, 유전의 세포적 기반을 밝힌 독일의 해부학자다.
일리야 메치니코프
1845–1916일리야 메치니코프는 불가사리 유충 실험으로 백혈구가 이물질을 직접 먹어치우는 식세포 작용을 발견하여 선천 세포 면역의 기반을 마련한 러시아 출신의 동물학자·면역학자다.
휘호 더프리스
1848–1935네덜란드의 식물학자·유전학자. 달맞이꽃 실험으로 '돌연변이' 개념을 창안하고 멘델 법칙을 독립적으로 재발견했다. 초기 유전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돌연변이(mutation)'라는 용어를 생물학에 정착시켰다.
마르티뉘스 베이에링크
1851–1931네덜란드의 미생물학자로, 1898년 담배 모자이크병 연구에서 세균보다 훨씬 작은 감염체를 발견하고 이를 '감염성 살아 있는 액체'라 불렀다. 이 발견이 바이러스학의 출발점이 됐으며, 그는 질소 고정 세균 등 토양 미생물 연구로도 크게 기여했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1852–1934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골지 염색법을 개량해 신경계가 독립된 뉴런들의 네트워크임을 증명한 뉴런 학설로 현대 신경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페인의 신경해부학자다.
파울 에를리히
1854–1915파울 에를리히는 항체의 특이적 결합을 설명한 측쇄 이론으로 면역학의 분자적 기초를 만들고, 최초의 화학요법제 살바르산을 개발해 '마법의 탄환' 개념을 현실화한 독일의 의사·면역학자다.
헨리 월터 베이츠
1825–1892영국의 박물학자·곤충학자. 앨프리드 월리스와 함께 아마존을 탐사해 무해한 나비 종이 독성 종의 색 무늬를 정밀하게 모방한다는 베이츠 의태를 발견했다. 다윈은 이를 자연선택의 가장 아름다운 증거라 극찬했다.
에른스트 헤켈
1834–1919독일의 생물학자·박물학자.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반복발생설을 주장하고 다윈주의를 독일과 유럽에 전파했다. 방산충·해파리 등 무척추동물 분류에 크게 기여했으며, 아름다운 자연 삽화로도 유명하다.
토머스 헌트 모건
1866–1945미국의 유전학자·동물학자. 초파리(Drosophila)를 모델 생물로 활용해 유전자가 염색체 위의 특정 위치에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 현대 유전학의 물리적 기초를 닦았다.
카밀로 골지
1843–1926이탈리아의 의사·신경과학자. 질산은 반응으로 개별 신경세포를 최초로 시각화하는 골지 염색법을 개발해 신경해부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카할과 함께 19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으며, 세포 소기관 골지체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월터 서턴
1877–1916미국의 유전학자·의사. 메뚜기 생식세포 연구를 통해 염색체가 멘델의 유전 인자를 운반한다는 염색체설을 제창했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유전학의 물리적 토대를 마련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에두아르트 부흐너
1860–1917독일의 화학자. 효모 세포 없이 효모 추출액만으로 발효가 가능함을 증명해 생기론을 뒤집고 생화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1907년 노벨 화학상 수상.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 1895 ~ 1945년
막스 플랑크
1858~1947년에너지가 연속이 아니라 덩어리(양자)로 오간다는 가설로 20세기 물리학을 연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
1859–1906마리 퀴리의 남편이자 공동 연구자. 폴로늄과 라듐 발견에 함께 기여했으며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마리 퀴리, 앙리 베크렐과 공동 수상했다. 1906년 파리 시내에서 마차 사고로 사망했다.
마리 퀴리
1867~1934년방사능을 연구해 원자가 쪼개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서로 다른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
1878–1968오스트리아 태생의 핵물리학자. 오토 한의 실험 결과에 이론을 부여해 핵분열 개념을 완성하며 원자력 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노벨상은 공동 연구자 한 단독에게 돌아갔다. 아인슈타인은 그녀를 '우리 시대의 마리 퀴리'라 불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879~1955년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우주를 보는 틀을 확장한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오토 한
1879–1968독일의 방사화학자.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았을 때 바륨이 생성됨을 화학적으로 확인해 핵분열의 실험적 증거를 제공했다. 이론 해석은 리제 마이트너가 담당했으나 노벨상은 단독 수상이었다.
닐스 보어
1885~1962년전자가 정해진 궤도에서만 존재하며 양자 도약을 한다는 원자 모형으로 현대 화학·물리의 토대를 놓은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1887~1961년에르빈 슈뢰딩거는 나치즘을 피해 아일랜드로 망명한 오스트리아 물리학자다. 파동역학으로 양자 세계를 기술하는 방정식을 세웠지만, 그 방정식이 내포하는 양자 중첩의 함의에 불편함을 느껴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으로 역설을 드러냈다.
베노 구텐베르크
1889–1960독일 태생의 미국 지구물리학자. 찰스 리히터와 함께 지진 규모 척도를 공동 개발했으며, 지구 외핵과 맨틀의 경계인 구텐베르크 불연속면을 발견했다.
제임스 채드윅
1891~1974년제임스 채드윅은 1차 대전 중 독일에 억류됐던 경험을 딛고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러더퍼드 아래 핵물리 연구에 전념했다. 중성자 발견은 단 수개월의 집중 실험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발견으로 핵분열 연구의 핵심 도구가 마련됐다.
루이 드브로이
1892~1987년루이 드브로이는 역사상 가장 대담한 박사 논문 중 하나를 썼다 — 전자가 파동이라는 것. 귀족 가문 출신으로 처음엔 역사를 공부했지만 형의 영향으로 물리학으로 전향했다. 그의 물질파 가설은 슈뢰딩거 방정식과 전자 현미경 탄생의 출발점이 됐다.
존 콕크로프트
1897–1967영국의 핵물리학자. 어니스트 월턴과 함께 전압 배증기로 양성자를 가속해 리튬 핵을 쪼개고, E = mc²를 실험으로 직접 검증한 최초의 인공 핵변환을 달성했다.
볼프강 파울리
1900~1958년볼프강 파울리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해 동시대 물리학자들이 '파울리 효과'라는 말을 만들었다 — 그가 실험실에 들어서면 기기가 고장난다는 농담이 있었다. 배타 원리로 주기율표의 구조를 해명한 것 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중성미자를 1930년에 예언했다.
어니스트 로런스
1901–1958미국의 물리학자. 자기장 안에서 나선형으로 반복 가속하는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해 핵물리학 실험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에서 훗날 수많은 노벨상 연구가 탄생했다.
엔리코 페르미
1901~1954년엔리코 페르미는 이론과 실험 모두에 정통한 20세기 최대의 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노벨상 시상식을 빌미로 이탈리아 파시즘을 피해 미국에 정착했다. 시카고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만든 그는 '원자력 시대의 건축가'라 불리며, 페르미온·페르미 에너지·페르밀라브·페르뮴(원소 100번) 모두 그의 이름에서 왔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901~1976년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와 행렬역학으로 양자역학 수립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2차 대전 중 독일 핵무기 프로그램을 이끌었으나,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는지는 오늘날까지 역사학계에서 논쟁 중이다.
프리츠 슈트라스만
1902–1980독일의 화학자. 1938년 12월 오토 한과 함께 베를린에서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격시켜 바륨이 생성됨을 화학적으로 확인, 핵분열의 실험적 증거를 제공했다.
어니스트 월턴
1903–1995아일랜드 출신 실험물리학자. 존 콕크로프트와 협력해 콕크로프트-월턴 전압 배증기를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양성자를 가속해 리튬 핵을 쪼갠 인류 최초의 인공 핵반응을 실현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1904–1967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 책임자.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트리니티 폭발을 목격한 뒤 핵 확산에 반대하며 평화적 핵 이용을 주창했다.
버트럼 볼트우드
1870–1927미국의 방사화학자·지질학자. 우라늄이 납으로 붕괴하는 비율을 이용해 암석의 나이를 최초로 정량 측정했다. 그의 연구는 지구 나이가 수십억 년에 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처음 확인했으며, 현대 방사성 연대측정법의 기초를 놓았다.
유카와 히데키
1907–1981일본의 이론물리학자. 핵력을 매개하는 새 입자(중간자)의 존재와 질량을 이론으로 예측해 소립자 물리학의 장(場) 기술 방식을 확립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훗날 표준 모형의 토대가 됐다.
알프레트 베게너
1880–1930독일의 기상학자·지구물리학자.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해안선·화석·지층의 일치를 근거로 대륙이동설을 주창했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후 판구조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윌리엄 헨리 브래그
1862–1942영국의 물리학자로, 아들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와 협력해 X선 회절을 이용한 결정 구조 분석법을 개척했다. 부자는 함께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
1890–1971남호주 출신의 영국 물리학자. 22세에 X선 결정학의 핵심 법칙을 유도해 아버지와 함께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물리학상 수상자로, 이후 DNA 이중나선 발견의 연구 환경을 구축했다.
구스타프 헤르츠
1887~1975전파를 발견한 하인리히 헤르츠의 조카. 제임스 프랑크와 함께 전자를 수은 기체에 충돌시키는 실험으로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적임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2차 대전 후 소련에서 동위원소 분리 연구를 진행했고, 말년에 동독 칼 마르크스 시 공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제임스 프랑크
1882~1964독일 함부르크 출생의 실험물리학자. 구스타프 헤르츠와 공동으로 수행한 전자-수은 충돌 실험으로 보어의 원자 모형이 제안한 에너지 불연속성을 직접 증명했다. 1933년 나치 집권 후 미국으로 망명해 시카고 대학에서 연구를 이어 갔으며, 원자폭탄의 민간인 사용에 반대하는 '프랑크 보고서'를 1945년 작성했다.
아서 에딩턴
1882–1944영국 천문학자·물리학자. 1919년 개기일식 원정을 이끌어 태양 곁에서 별빛이 굽는 것을 관측,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최초로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빌헬름 비에르크네스
1862–1951노르웨이의 물리학자·기상학자. 유체역학 원리를 대기에 적용해 기상전선 이론과 저기압 발달 모델을 완성했으며, 베르겐 학파를 이끌어 현대 일기예보의 개념적 토대를 마련했다.
밀루틴 밀란코비치
1879–1958세르비아의 수학자·천문학자·지구물리학자. 지구 공전궤도 이심률·자전축 기울기·세차운동의 주기적 변화가 극지방 일사량을 조절해 빙하기를 유발함을 수십 년의 계산으로 증명했다.
오토 슈테른
1888–1969독일계 미국 물리학자. 발터 게를라흐와 함께 분자선 실험으로 원자 각운동량의 공간 양자화를 최초로 증명했으며, 194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발터 게를라흐
1889–1979독일 물리학자. 오토 슈테른과 함께 1922년 불균일 자기장 실험에서 은 원자 빔이 두 갈래로 갈라짐을 발견해 양자 스핀의 공간 양자화를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아서 콤프턴
1892–1962미국 물리학자. X선이 전자와 충돌할 때 파장이 변함(콤프턴 산란)을 발견해 광자의 입자적 특성을 확정짓고 192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
1894–1974콜카타 출신의 인도 물리학자. 1924년 광자를 구별 불가능한 양자 입자로 취급하는 통계역학을 유도해 아인슈타인에게 보냈고, 두 사람의 협력으로 '보손(boson)'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됐다.
막스 보른
1882–1970독일계 영국 물리학자. 슈뢰딩거 파동함수의 절댓값 제곱이 확률 밀도를 나타낸다는 보른 규칙을 제안해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을 확립했으며, 1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조르주 르메트르
1894–1966벨기에의 가톨릭 신부이자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어 팽창하는 우주 모형과 속도–거리 비례 관계를 허블보다 2년 앞서 유도했다. 빅뱅 이론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C. V. 라만
1888–1970인도의 물리학자. 1928년 단색광이 분자와 비탄성 충돌해 진동수가 바뀌는 라만 효과를 발견했다. 193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며 아시아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조지 가모프
1904~1968러시아 오데사(현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24세에 양자 터널링으로 알파 붕괴를 설명해 일약 스타 물리학자가 됐다. 이후 빅뱅 직후 경원소 합성 이론을 제안하고, DNA의 유전 암호 암호화 방식을 최초로 제안하는 등 핵물리학·우주론·분자생물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기여를 남겼다.
폴 디랙
1902–1984영국 이론물리학자.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한 디랙 방정식으로 반물질의 존재를 예언하고,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수브라마냔 찬드라세카르
1910–1995인도 출신의 미국 천체물리학자. 19세에 배 위에서 백색 왜성의 임계 질량을 계산하고, 평생 별의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이론화했다. NASA의 찬드라 X선 망원경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칼 앤더슨
1905–1991미국의 실험물리학자. 우주선 연구 중 안개 상자 사진에서 양전자를 발견해 반물질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했다. 4년 뒤인 1936년에는 뮤온도 발견했다.
파벨 체렌코프
1904~1990소련의 실험물리학자. 세르게이 바빌로프 연구소에서 방사선을 쬔 액체의 발광을 연구하던 중 형광과 다른 새로운 종류의 빛을 발견했다. 이 발광의 이론적 설명은 일리야 프랑크와 이고르 탐이 1937년에 완성했으며, 세 사람은 공동으로 195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체렌코프 검출기는 오늘날 고에너지 물리학 실험과 중성미자 관측의 핵심 장비다.
찰스 리히터
1900–1985미국의 지진학자. 지진파 최대 진폭의 로그를 이용한 규모 척도를 개발해 지진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첫 표준을 만들었다. 리히터 규모는 수십 년간 지진학의 표준 척도로 사용됐다.
DNA와 현대 생명과학 · 1928 ~ 2020년
오즈월드 에이버리
1877~1955년캐나다 태생 미국 의사이자 과학자로, 세균 형질전환 실험을 통해 유전물질이 DNA임을 처음 증명했다. 조용하고 신중했으나 그의 결과는 분자생물학의 방향을 결정했다.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이 과학사의 아쉬운 페이지로 남는다.
알렉산더 플레밍
1881~1955년스코틀랜드 출신 세균학자로, 곰팡이 오염 배양 접시에서 세균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해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실수처럼 보인 발견'이 의학 역사를 바꾼 대표적 사례다. 플로리·체인과 함께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바버라 매클린톡
1902–1992미국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세포유전학자. 수십 년에 걸친 옥수수 낟알 색 변이 연구를 통해 유전자가 염색체 위를 이동할 수 있다는 전이인자 개념을 발견했다. 당시 학계에서 외면받았으나 분자생물학이 발전한 뒤 재평가됐고, 81세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여성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조지 비들
1903–1989붉은빵곰팡이 실험으로 유전자와 효소의 일대일 관계를 밝혀 분자유전학의 기초를 닦은 미국 유전학자.
에르빈 샤가프
1905–2002오스트리아 태생 미국 생화학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다양한 생물 종의 DNA 염기 조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A=T, G=C라는 샤가프의 법칙을 수립했다. 이 발견은 왓슨·크릭의 이중나선 모형 구축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으며, 분자생물학의 탄생을 앞당겼다.
막스 델브뤼크
1906–1981물리학자 출신으로 박테리오파지 연구를 통해 분자생물학의 방법론을 확립한 독일계 미국 과학자.
알프레드 허시
1908–1997미국의 미생물학자로 카네기 연구소에서 박테리오파지 유전학을 연구했다. 마사 체이스와 함께한 1952년 블렌더 실험으로 DNA가 유전물질임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분자생물학의 토대를 닦았다.
에드워드 테이텀
1909–1975비들과 함께 유전자-효소 연결을 증명해 생화학 유전학을 창시한 미국 과학자.
자크 모노
1910–1976프랑스의 생화학자·분자생물학자로 파스퇴르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대장균의 젖당 분해 효소 연구에서 출발해 프랑수아 자코브와 함께 오페론 모델을 확립, 유전자 발현 조절의 첫 분자적 메커니즘을 밝혔다. 과학 철학서 《우연과 필연》은 현대 과학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살바도르 루리아
1912–1991델브뤼크와 함께 세균 돌연변이의 무작위성을 실험으로 증명한 이탈리아계 미국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
1916~2004년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전향해 왓슨과 함께 DNA 구조를 밝힌 분자생물학자.
모리스 윌킨스
1916–2004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생물물리학자. DNA의 X선 회절 데이터를 제공해 이중나선 구조 발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왓슨·크릭과 함께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아서 코른베르크
1918–2007DNA 복제 효소를 처음으로 분리해 시험관에서 DNA 합성을 실현한 미국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
1918–2013영국의 생화학자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MRC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연구했다. 단백질 서열 분석(인슐린)과 DNA 서열 분석(사슬 종결법) 두 가지 혁명적 방법론을 개발해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두 번 바꿨다. 노벨 화학상을 두 차례 받은 유일한 과학자다.
프랑수아 자코브
1920–2013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로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뒤 과학에 입문했으며, 자크 모노와 협력해 유전자가 어떻게 환경에 따라 켜지고 꺼지는지를 설명하는 오페론 모델을 확립했다. 이 업적으로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1920~1958년DNA 이중나선 발견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으나 오래도록 정당한 공을 인정받지 못한 화학자.
헨리에타 랙스
1920–1951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흑인 여성으로, 1951년 자궁경부암 치료를 위해 존스홉킨스 병원을 방문했다가 동의 없이 조직이 채취됐다. 그녀의 암세포(HeLa)는 최초의 불멸 인간 세포주로 배양돼 수십 년간 의학 연구에 쓰였으나, 그녀와 가족은 수십 년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의학 연구에서 환자 동의와 인체 자원 소유권 논쟁의 상징이 됐다.
세사르 밀스테인
1927–2002쾰러와 함께 하이브리도마 세포를 개발해 단클론 항체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아르헨티나-영국 과학자.
마사 체이스
1927–2003미국의 생물학자로 카네기 연구소에서 알프레드 허시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1952년 블렌더 실험을 공동 수행했다. 방사성 동위원소 표지 기법을 적용해 DNA만이 세균 내부에 주입되는 물질임을 입증했다. 허시가 1969년 단독으로 노벨상을 받는 동안 공동 기여자로서의 인정은 뒤늦게 이뤄졌다.
마셜 니런버그
1927~2010년미국의 생화학자로 폴리-U 실험으로 최초의 유전 코돈을 해독해 생명의 분자 언어 번역에 처음 성공했다. 비교적 무명이었지만 결정적 돌파구를 열었고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제임스 왓슨
1928년~크릭과 함께 DNA가 이중나선임을 밝혀 분자생물학 시대를 연 생물학자.
프랭클린 스탈
1929–오리건 대학교 분자생물학자. 매슈 메셀슨과 함께 칼텍에서 수행한 밀도경사 초원심분리 실험으로 DNA의 반보존적 복제를 입증했다. 이후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자 재조합 기전을 연구했다.
하인리히 마테이
1929–2022독일 생화학자. 마셜 니런버그와 함께 세포 추출액 번역 실험을 수행해 첫 번째 코돈(UUU = 페닐알라닌)을 해독, 유전 암호 해독의 포문을 열었다.
매슈 메셀슨
1930–하버드 대학교 분자생물학자. 캘리포니아공과대학원생 시절 프랭클린 스탈과 함께 질소 동위원소 추적 실험을 설계해 DNA 복제가 반보존적임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 이후 화학·생물무기 금지 국제 협약 지지 활동으로도 알려졌다.
존 거던
1933–존 거던은 분화된 개구리 세포의 핵이 완전한 발생을 지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 핵이식과 세포 재프로그래밍 연구의 문을 열었다.
하워드 테민
1934–1994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 바이러스학자. 종양 바이러스가 RNA 게놈을 DNA로 역전사한다는 '프로바이러스 가설'을 10년간 고집해 처음에는 학계의 냉소를 받았지만, 1970년 역전사효소를 실험으로 증명해 센트럴 도그마의 예외를 확립했다. 오랜 비흡연자임에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탠리 코언
1935–스탠퍼드 대학교의 생화학자·유전학자. 플라스미드(소형 원형 DNA) 전문가로 허버트 보이어와 협력해 1973년 최초의 재조합 DNA 생물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공동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허버트 보이어
1936–미국 UCSF의 생화학자. 제한효소 연구 전문가로 스탠리 코언과 협력해 최초의 재조합 DNA 생물체를 만들었다. 1976년 로버트 스완슨과 함께 제넨텍을 창업해 바이오산업의 시대를 열었다.
데이비드 볼티모어
1938–MIT와 칼텍에서 활동한 미국 바이러스학자·분자생물학자. 하워드 테민과 독립적으로 역전사효소를 발견해 RNA→DNA 정보 흐름을 실증했다. 이후 HIV 연구와 에이즈 정책 자문, 생명윤리 논의에도 깊이 관여했다.
존 설스턴
1942~2018존 설스턴은 영국의 생물학자로,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세포 계보와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의 유전적 조절을 밝혔다. 이 업적으로 2002년 시드니 브레너, 로버트 호비츠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생어 센터 초대 소장으로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대규모 서열 분석을 이끌었으며, 유전체 정보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도록 공개하는 원칙을 옹호했다.
스탠리 프루시너
1942–스탠리 프루시너는 핵산 없이 단백질만으로 감염을 일으키는 '프라이온'을 발견해 생물학의 기본 도그마에 새로운 예외를 추가했다.
이언 윌머트
1944–2023이언 윌머트는 성체 양의 유방 세포를 이용한 체세포 복제 핵이식으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켜 포유류 복제의 첫 장을 열었다.
캐리 멀리스
1944~2019년미국의 생화학자로 한밤의 드라이브 중 PCR의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전해진다. DNA 한 조각을 수백만 배로 증폭하는 이 기술은 생명과학의 모든 분야를 바꿨으며, 1993년 노벨 화학상으로 이어졌다.
크레이그 벤터
1946–미국 유전체학자이자 기업인. J.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JCVI)를 설립해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민간 경쟁자로 활약했고, 2010년 역사상 최초로 화학 합성 게놈을 가진 자기복제 세포를 만들어 합성생물학의 새 시대를 열었다.
게오르게스 쾰러
1946–1995밀스테인과 함께 단클론 항체 생산 기술을 발명해 현대 항체 의학의 문을 연 독일 면역학자.
엘리자베스 블랙번
1948–태즈메이니아 출신 호주계 미국 분자생물학자. UC샌프란시스코 교수 재직 중 캐럴 그레이더와 함께 텔로머레이스를 발견해 세포 노화의 분자 기전을 밝혔다. 2009년 그레이더·쇼스탁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여성 과학자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프랜시스 콜린스
1950~프랜시스 콜린스는 미국의 유전학자이자 의사로,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를 이끌며 공공 부문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지휘했다. 그가 이끈 국제 컨소시엄은 2000년 인간 유전체 초안을, 2003년 완성된 표준 서열을 발표했다. 이후 오랫동안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을 지냈다.
커리코 커털린
1955–커리코 커털린은 수십 년간 외면받은 mRNA 연구를 이어가며 슈도유리딘 치환이라는 핵심 기술을 개발했고, 이 성과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수백만 명을 구한 mRNA 백신의 토대가 됐다.
앤드루 파이어
1959–스탠퍼드 대학교 분자생물학자. 카네기 연구소 재직 시절 크레이그 멜로와 공동 연구로 이중가닥 RNA가 상보적 mRNA를 특이적으로 침묵시키는 RNAi 현상을 선충 실험으로 밝혔다. 발견 8년 만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드루 와이스먼
1959–드루 와이스먼은 커리코 커털린과 함께 변형 mRNA 기술을 공동 개발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mRNA 백신 플랫폼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크레이그 멜로
1960–매사추세츠 의과대학 분자생물학자. 앤드루 파이어와 공동으로 이중가닥 RNA에 의한 유전자 침묵 현상(RNAi)을 발견했다. 선충(C. elegans) 유전학 및 RNA 생물학 분야의 선도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캐럴 그레이더
1961–캘리포니아 출신 미국 분자생물학자. UC버클리 블랙번 연구실의 대학원생이던 1984년 크리스마스 당일 실험에서 텔로머레이스의 효소 활성을 처음 검출했다. 현재 UC샌타크루스 교수로 재직하며 텔로미어·텔로머레이스와 노화·암의 관계를 연구한다.
야마나카 신야
1962–야마나카 신야는 단 4개의 전사인자로 성체 세포를 배아줄기세포 수준으로 역분화시키는 iPS 세포 기술을 개발해 재생의학 연구에 혁명을 가져왔다.
제니퍼 다우드나
1964년~미국의 생화학자로 RNA 구조 연구를 기반으로 샤르팡티에와 함께 크리스퍼-Cas9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다. 20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며 유전자 편집의 새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1968년~프랑스 미생물학자로 세균의 크리스퍼 면역 체계를 연구하다 그 원리를 유전자 편집에 응용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다우드나와의 협업으로 크리스퍼-Cas9을 개발했고 2020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컴퓨터 · 우주 · AI · 1837년 ~ 현재
찰스 배비지
1791~1871년찰스 배비지는 기계식 계산기 개념을 개척한 영국의 수학자이자 발명가다. 그의 해석기관 설계는 입력·처리·기억·출력을 갖춘 현대 컴퓨터의 청사진이었으나, 재정 지원과 기계 제작 기술의 한계로 완성되지 못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해석기관을 위한 최초의 알고리즘을 씀으로써 두 사람의 협업은 컴퓨팅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1815~1852년컴퓨터가 존재하기 100년 전에 최초의 알고리즘을 쓰고 기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본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드윈 허블
1889~1953년에드윈 허블은 우주의 규모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한 미국의 천문학자다. 그는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 안의 성운이 아니라 독립된 은하임을 증명함으로써 우주가 우리 은하 너머로 광대함을 밝혔다. 나아가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는 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는 허블 법칙을 발견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빅뱅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월터 브래튼
1902~1987년벨연구소에서 바딘·쇼클리와 함께 최초의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만든 실험물리학자.
존 폰 노이만
1903–195720세기 최고의 다재다능한 천재 중 한 명. 수학·물리·경제·컴퓨터 과학을 넘나들며 현대 컴퓨터의 기본 구조를 설계했다.
그레이스 호퍼
1906–1992미국 해군 제독이자 컴퓨터 과학 선구자로, 컴파일러를 발명해 프로그래밍의 역사를 바꿨다.
존 모클리
1907~1980존 모클리는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컴퓨터 개척자로, 1942년 범용 전자식 컴퓨터의 필요성을 제안하는 메모를 작성했다. 그는 개념 설계를 맡고 존 프레스퍼 에커트가 하드웨어 공학을 맡아, 최초의 범용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을 함께 만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회사를 세워 미국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유니박 1을 개발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
1907~1966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소련의 로켓 공학자로 초기 소련 우주 계획을 총괄한 수석 설계자였다. 그는 세계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R-7을 개발했고, 이를 개조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1961년에는 유리 가가린의 인류 첫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시켰으나, 생전에는 신원이 국가 기밀로 유지되어 '수석 설계자'로만 불렸다.
존 바딘
1908~1991년쇼클리·브래튼과 함께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훗날 초전도 이론으로 다시 노벨상을 받아 물리학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인물.
콘라트 추제
1910–1995독일의 토목기사 출신 발명가로, 직접 제작한 Z1·Z2·Z3 컴퓨터를 통해 이진 부동소수점 연산과 프로그래밍 개념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국가 지원 없이 홀로 컴퓨터를 발명한 독보적 선구자다.
윌리엄 쇼클리
1910~1989년윌리엄 쇼클리는 미국의 물리학자로 벨연구소에서 존 바딘·월터 브래튼과 함께 트랜지스터를 공동 발명해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후 실리콘밸리에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해 오늘날 첨단 기술 산업 집적지의 직접적 씨앗을 뿌렸다. 과학적 업적과 달리 인종차별적 우생학 주장으로 만년을 논란 속에 보낸 복잡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반 게팅
1912~2003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공학자로, 항공우주 연구기업 에어로스페이스 코퍼레이션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3차원 위치를 위성으로 파악하는 항법 시스템의 필요성을 앞장서 주장하고 그 연구를 추진해 지피에스의 토대를 놓았다.
앨런 튜링
1912~1954년컴퓨터가 만들어지기 전에 '계산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현대 컴퓨터·AI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수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
1912~1977베르너 폰 브라운은 독일 출신의 로켓 공학자로, 나치 독일 시절 페네뮌데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인 V-2 로켓 개발을 주도했다. V-2는 강제수용소 노동으로 생산되었으며, 무기로 사용되기 전 제조 과정에서만 약 1만 2천 명의 강제 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미국에 투항한 그는 이후 미국 항공우주국에 합류해 아폴로 계획의 새턴 5 로켓 수석 설계자로서 인류의 달 착륙을 가능하게 했다.
라이먼 스피처
1914~1997라이먼 스피처는 미국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다. 1946년 지구 대기 밖에서 관측하는 우주망원경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으며, 이는 훗날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실현되었다. 또한 핵융합 장치 스텔러레이터를 고안하고 플라스마 물리 연구를 개척했다.
클로드 섀넌
1916~2001년클로드 섀넌은 정보 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수학자이자 전기공학자다. 1948년 발표한 논문 '통신의 수학적 이론'에서 정보를 비트 단위로 정의하고, 잡음이 있는 채널에서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최대 정보량을 수학으로 규명했다. 그의 이론은 디지털 통신·컴퓨팅·암호학의 이론적 토대로 사실상 디지털 세계를 가능하게 한 이론이다.
프레스퍼 에커트
1919~1995존 프레스퍼 에커트는 미국의 전기공학자이자 컴퓨터 개척자로, 존 모클리와 함께 최초의 범용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 에니악을 설계했다. 그는 에니악의 수석 엔지니어로서 하드웨어 공학을 책임졌다. 또한 수은 지연선 기억장치를 발명했으며, 두 사람이 세운 회사에서 미국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유니박 1을 개발했다.
로저 이스턴
1921~2014미국의 과학자로 해군연구소에서 위성 항법 기술을 개척했다. 1960~70년대에 타이메이션 위성을 통해 수동 거리 측정과 위성에 실은 고정밀 시계 개념을 실증했는데, 이는 오늘날 지피에스의 핵심 기반 기술이 되었다.
잭 킬비
1923–2005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엔지니어로 1958년 게르마늄 칩에 트랜지스터와 저항을 집적해 마이크로칩 시대를 열었다.
존 배커스
1924–2007IBM에서 FORTRAN을 만들어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 시대를 연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더글러스 엥겔바트
1925–2013마우스와 GUI의 원형을 발명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의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바꾼 발명가.
낸시 그레이스 로먼
1925~2018미국의 천문학자로, 미국 항공우주국의 첫 천문학 책임자이자 최초의 여성 임원이었다. 우주에서 관측하는 천문학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허블 우주망원경의 기획을 이끌어 '허블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를 기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에 이름이 붙었다.
로버트 노이스
1927–1990실리콘 평면 공정으로 실용적인 집적 회로를 만들고 인텔을 공동 창업해 실리콘밸리의 아이콘이 된 발명가·기업인.
고든 무어
1929–20231965년 반도체 밀도의 지수적 성장을 예측해 '무어의 법칙'을 제시하고, 인텔을 공동 창업해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을 일궈냈다.
피터 힉스
1929~2024년피터 힉스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로 1964년 입자가 질량을 얻는 메커니즘을 제안하고 관련 보손의 존재를 예측했다. 이 입자는 반세기 뒤인 2012년 CERN의 대형강입자가속기에서 발견되어 '힉스 보손'으로 불리게 됐고, 그는 프랑수아 엥글레르와 함께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24년 별세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발견을 생전에 직접 눈으로 확인한 행운의 과학자였다.
닐 암스트롱
1930~2012닐 암스트롱은 미국의 우주비행사이자 항공우주공학자로, 시험비행조종사 출신이다. 1969년 아폴로 11호 선장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 위를 걸었다. 그는 이후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라이너 바이스
1932~2025독일계 미국인 물리학자로, 레이저 간섭계로 중력파를 검출하는 방법을 처음 고안했다. 라이고 관측소의 공동 창설자로서 2015년 인류 최초의 중력파 직접 관측을 이끌었고, 이 공로로 2017년 킵 손, 배리 배리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아노 펜지어스
1933–2024독일 태생 미국 물리학자로, 벨 연구소에서 로버트 윌슨과 함께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발견해 빅뱅 이론을 관측적으로 확증했다.
칼 세이건
1934~1996칼 세이건은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행성과학자로, 대중에게 과학을 알린 대표적 과학저술가다. 여러 미국 항공우주국의 탐사 계획에 참여했으며, 보이저 골든 레코드와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행성 대기 연구와 함께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레너드 클라인록
1934~레너드 클라인록은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로, 대기행렬 이론을 바탕으로 데이터 통신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세운 인터넷의 선구자다. 그의 연구실이 아파넷 최초의 접속점이 되어 1969년 세계 최초의 네트워크 메시지가 이곳에서 전송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브래드퍼드 파킨슨
1935~미국의 공학자이자 공군 장교로, 지피에스의 근간이 된 나브스타 프로그램을 이끈 총괄 설계자다. 여러 갈래로 진행되던 위성 항법 연구를 하나의 실용적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개발을 관철시켜 '지피에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배리 배리시
1936~미국의 실험물리학자로 라이고의 소장을 맡아 소규모 연구를 천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형 국제 공동연구로 발전시켰다. 그의 조직력 덕분에 2015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를 처음으로 직접 관측할 수 있었다. 이 공로로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에드워드 스톤
1936~2024에드워드 스톤은 미국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우주과학자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물리학 교수를 지냈다. 1972년부터 2022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50년 동안 보이저 탐사 계획의 프로젝트 과학자로 일했다. 또한 제트추진연구소 소장을 맡아 여러 행성 탐사를 이끌었다.
로버트 우드로 윌슨
1936–미국 물리학자로, 벨 연구소에서 아노 펜지어스와 함께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발견했다. 이 발견은 빅뱅 우주론의 핵심 관측 증거로 꼽힌다.
로런스 로버츠
1937~2018로런스 로버츠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인터넷의 선구자다. 미국 고등연구계획국에서 아파넷 계획을 총괄하며 세계 최초의 패킷 교환망을 설계하고 구축했다. 이후 상용 통신망 회사 텔레넷을 세워 패킷 교환 기술을 산업으로 확장했다.
로버트 칸
1938–ARPANET 구축에 참여하고 빈트 서프와 함께 TCP/IP를 공동 설계해 현대 인터넷의 통신 기반을 확립한 엔지니어.
킵 손
1940~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기반한 중력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연구했다. 1984년 라이고 프로젝트를 공동 설립해 중력파 검출을 이끌었고, 2015년 두 블랙홀의 충돌에서 나온 중력파를 인류 최초로 관측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공로로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데니스 리치
1941–2011C 언어를 만들고 유닉스를 공동 개발해 현대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기반을 닦은 컴퓨터 과학자.
미셸 마요르
1942–스위스 천문학자로, 제네바 대학교에서 디디에 크엘로와 함께 시선속도법으로 태양과 유사한 항성 주위 최초의 외계 행성을 발견해 외계 행성 천문학 시대를 열었다.
조슬린 벨 버넬
1943–북아일랜드 출신 천문학자로, 케임브리지대 박사 과정 중 펄사를 최초로 발견했다. 지도교수가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만 벨은 수상에서 제외돼 과학계의 공정성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켄 톰프슨
1943–벨 연구소에서 데니스 리치와 함께 유닉스를 만든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빈트 서프
1943–'인터넷의 아버지' 중 한 명. 로버트 칸과 함께 TCP/IP를 개발해 서로 다른 컴퓨터 네트워크를 하나의 인터넷으로 묶는 언어를 만들었다.
휫필드 디피
1944–마틴 헬만과 함께 공개키 암호화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립해 현대 인터넷 보안의 기초를 만든 암호학자.
마틴 헬만
1945–휫필드 디피와 공개키 암호화를 공동 발명해 인터넷 보안의 수학적 토대를 세운 암호학자.
존 매더
1946~존 매더는 미국의 천체물리학자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정밀하게 측정한 코비 위성 연구를 주도해 빅뱅 이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 이 공로로 2006년 조지 스무트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또한 1995년부터 2023년까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수석 프로젝트 과학자로 활동했다.
스티브 워즈니악
1950~스티브 워즈니악은 미국의 전기공학자이자 발명가로, 개인용 컴퓨터 혁명을 이끈 선구자다. 1976년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하고, 애플 I과 애플 II 컴퓨터를 직접 설계했다. 특히 애플 II는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에게 널리 보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시아 리케
1951~마르시아 리케는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애리조나 대학교 교수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근적외선 카메라 니르캠 책임 연구자로서 장비의 개발과 궤도 운용을 이끌었다. 적외선 천문학의 개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은하 중심부 관측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팀 버너스리
1955년~팀 버너스리는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로 1989년 CERN에서 월드 와이드 웹을 발명했다. URL·HTML·HTTP라는 세 가지 핵심 기술을 설계해 전 세계 문서를 하이퍼링크로 연결했으며, 이 기술들을 특허 없이 무료로 공개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웹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퍼진 통신 혁명이 되었다.
머리 캠벨
1957~캐나다의 컴퓨터 과학자로, 세계 체스 챔피언을 처음으로 이긴 컴퓨터 딥 블루 개발팀의 핵심 구성원이다. 1989년 아이비엠에 합류해 딥 블루의 인공지능 부분을 맡았으며, 1997년 카스파로프와의 대국에서는 컴퓨터가 정한 수를 직접 체스판에 옮기는 역할을 했다.
찰스 킬링
1928–2005스크립스해양연구소 지구화학자로,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처음으로 지속 측정했다. 그의 킬링 곡선은 현대 기후과학과 기후 정책의 근본 데이터가 됐다.
쉬펑슝
1959~대만계 미국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전기공학자로, 아이비엠 딥 블루의 총괄 설계자다. 대학원 시절 만든 칩테스트에서 시작해 체스 수를 계산하는 전용 칩을 설계했고, 1997년 딥 블루가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해리 헤스
1906–1969프린스턴대학교 지질학자이자 해군 제독으로, 전쟁 중 수행한 해저 음파 탐사를 바탕으로 해저 확장설을 제안해 판 구조론의 토대를 닦았다.
에드워드 로렌츠
1917–2008MIT 기상학 교수로, 컴퓨터 기상 시뮬레이션 도중 초기 조건 민감성을 발견해 카오스 이론의 창시자가 됐다. 그의 연구는 복잡계 과학 전반에 혁명을 일으켰다.
J. 투조 윌슨
1908–1993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지구물리학자로, 변환 단층과 열점 개념으로 판 경계의 세 유형을 완성하고 판 구조론의 이론적 틀을 굳혔다. 하와이 섬 체인을 열점 이론으로 설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디디에 크엘로
1966–스위스 천문학자로, 박사 과정 중 미셸 마요르와 함께 최초의 태양형 외계 행성 51 페가시 b를 발견했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카벤디시 연구소에서 외계 행성 탐색 연구를 이끌고 있다.
셰퍼드 도엘만
1967~미국의 천체물리학자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를 창립하고 이끌었다. 전 세계 여러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만 한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고, 2019년 인류 최초로 블랙홀의 그림자를 직접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댄 맥켄지
1942–케임브리지대학교 지구물리학자로, 모건과 독립적으로 판 운동의 수리적 모델을 발표해 판 구조론의 수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지구물리학의 현대 수리과학화를 이끈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제이슨 모건
1935–프린스턴대학교 지구물리학자로, 1968년 지구 표면을 덮는 판의 운동을 수치적으로 기술한 정량 모델을 발표해 판 구조론을 완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마리오 몰리나
1943–2020UC어바인 및 MIT에서 활동한 멕시코 출신 대기화학자로, 셔우드 롤런드와 함께 CFC가 성층권 오존을 촉매적으로 파괴함을 밝혀 몬트리올 의정서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셔우드 롤런드
1927–2012UC어바인 화학 교수로, 마리오 몰리나와 함께 CFC가 성층권에서 자외선에 분해돼 오존을 촉매 파괴함을 증명했다. 이 발견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국제 환경 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를 이끌어냈다.
데이비드 실버
1976~영국의 컴퓨터 과학자로 심층 강화학습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딥마인드에서 바둑 세계 챔피언을 이긴 최초의 프로그램 알파고 개발을 이끌었고, 규칙만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알파제로도 주도했다. 오랫동안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연구해 왔다.
데미스 허사비스
1976~영국의 인공지능 연구자이자 기업인으로 2010년 딥마인드를 공동 설립했다. 딥마인드는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 알파폴드를 만들어 인공지능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단백질 구조 예측에 기여한 공로로 존 점퍼, 데이비드 베이커와 함께 202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노엄 샤지어
1976~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기업인으로 2017년 논문 「어텐션 이즈 올 유 니드」의 여덟 공동 저자 중 한 명이다. 이 논문이 선보인 트랜스포머 구조는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었다. 이후 대화형 인공지능 기업 캐릭터 에이아이를 공동 설립했다.
존 점퍼
1985~존 점퍼는 미국의 계산생물학자이자 화학자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알파폴드의 개발을 이끌었다. 이 업적으로 2024년 데미스 허사비스, 데이비드 베이커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받았으며, 70여 년 만의 최연소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아시시 바스와니
1986~인도의 컴퓨터 과학자로 2017년 논문 「어텐션 이즈 올 유 니드」의 제1저자다. 이 논문은 여덟 명이 동등하게 기여했으며,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의 토대가 된 트랜스포머 신경망 구조를 처음 선보였다. 이후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 이센셜 에이아이를 공동 설립했다.
일리야 수츠케버
1986~일리야 수츠케버는 이스라엘과 캐나다 국적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기계학습 연구자다. 2012년 알렉스넷을 공동 설계해 딥러닝 혁명의 불씨를 지폈고, 2015년 오픈에이아이를 공동 창립해 최고과학자로 일했다. 2024년에는 안전한 초지능 개발을 목표로 하는 회사를 새로 세웠다.
케이티 바우만
1989~케이티 바우만은 전산 영상 분야에서 일하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다. 2019년 인류가 처음으로 블랙홀을 촬영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에서 영상 복원 알고리즘 개발을 주도했다. 다만 이 성과는 수백 명의 국제 공동 연구진이 함께 이룬 것으로, 그는 여러 핵심 기여자 가운데 한 명이다.
알렉 래드퍼드
1993~알렉 래드퍼드는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자다. 오픈에이아이에서 지피티 초기 논문의 주 저자로 오늘날 챗봇의 토대가 된 생성형 언어 모델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미지와 언어를 연결하는 클립, 음성 인식 모델 위스퍼, 이미지 생성 모델 달리 등 여러 핵심 모델 개발에도 참여했다.